[중앙 칼럼] 수상한 허리케인 피해 집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공항에서 차를 타고 약 3시간 이동해 도착한 해안가 마을은 그야말로 폭탄을 맞은 듯 참담했다. 집들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산산조각 났고, 강풍에 떠밀려 온 배들은 도로 여기저기에 나뒹굴고 있었다. 한순간에 집을 잃은 주인들은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듯 무너져 내린 집 앞에 간이 의자를 펴놓고 한숨만 내쉬었다. 대부분 70대 이상의 시니어들이었다. 아예 마을 전체가 물에 잠긴 곳도 있었다. 주택들은 수면 위로 지붕만 겨우 모습을 드러냈고, 꺾인 나무 기둥과 자동차 등은 물 위에 둥둥 떠다녔다. 현장 곳곳에선 기자들이 라이브 방송을 하며 참담한 상황을 전하고 있었다. 역대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 가운데 5번째로 강력했던 ‘이언’이 지난달 28~29일 플로리다를 휩쓸었다. 플로리다에서만 85명의 사망자가 확인됐고, 피해 지역 전체에서 1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첫날 취재를 마치고 우연히 한인 식당을 발견했다. 조심스레 한인들 피해 상황을 물었다. 한인 업주는 그야말로 “처참하다”고 했다. 마을이 물에 완전히 잠겼고, 시체가 둥둥 떠다닐 정도였다고 했다. 맞은편 테이블에 앉아있던 한인 A씨도 직접 겪은 이야기를 털어놨다. 아들을 찾으러 무작정 물을 건넜다고 했다. 죽을 뻔한 위험도 겪었지만 침수된 집에 혼자 남아있을 아들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계속 일부 지역만 집중 보도를 한다고 했다. 이렇게 사람이 죽어 나가고 있는데, 자신들이 사는 마을은 한 번도 조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망자 수 집계도 ‘수상하다’고 했다. 마침 식당에 들어온 또 다른 손님도 “직접 본 시체만 여럿이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소위 ‘부자 동네’라 불리는 곳이기 때문에 땅값 떨어질까 쉬쉬하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허리케인이 들이닥친 이 상황이 정치권에는 하나의 게임에 불과한 것일까 허탈하다고 했다. 개발업자들의 이기적인 욕심이 결국 허리케인 피해를 키웠다는 비난도 나왔다. 한 손님은 “이전에도 수 없이 많은 허리케인이 지나갔지만, 이 동네에 이런 피해는 없었다”고 했다. 지반이 약한데 무리하게 땅을 파 건물을 올리고 개발을 진행하면서 허리케인 강풍에 와르르 무너졌다는 것이다. 집 보험은 들어 놨냐는 질문에도 대부분 혀를 찼다. 집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는 혜택을 받을지 몰라도 세입자는 아무런 지원이 없다는 것이다. 가구 등 침수된 물건들이 많지만 이에 대한 지원은 없다고 했다. 최근 허리케인 ‘이언’으로 인한 보험사의 손해액이 572억 달러에 달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왔다. 집 소유주들만 신이 났을 것이라며 허탈하다고 했다. 날이 밝은 다음 날, 식당에서 만난 한인들이 알려준, 언론의 조명을 받지 못한 그 마을에 가 보았다. 이미 물이 다 빠진 상태였지만, 집집마다 까만 물때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성인 가슴 위까지 물이 차올랐음을 충분히 알 수 있는 흔적이었다. 마을 곳곳에는 ‘홍수 전문’이라는 문구가 쓰인 트럭이 세워져 있었고, 집 앞에는 침수된 가구들이 잔뜩 나와 있었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보면, 허리케인이 강타할 당시 이 마을의 상황이 어땠을지 눈에 그려졌다. 전날 식당에서 손님들이 하소연한 말들도 오버랩됐다. 다른 마을과 달리 언론 관계자는 찾을 수 없었다. 앞으로 몇 개월 후 이 마을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일부 한인들은 그 지역 시장에게 탄원서를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했다. 수상한 집계의 오해가 바로 잡힐 수 있길 바라본다. 홍희정 / JTBC특파원중앙 칼럼 허리케인 수상 허리케인 피해 허리케인 강풍 허리케인 가운데